김ㅇㅇ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이복형제들과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은 해외로 이민을 가셨지만 김 00씨는 한국에 남아 조부모님 밑에서 성장하여야 했습니다.
김ㅇㅇ 씨는 어려서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여야만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는 치기공 자격증을 취득하여 취직해야 했습니다.
김ㅇㅇ씨는 이후 치과 기공실에서 10년을 근무하였습니다.
김ㅇㅇ씨는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결혼을 하였습니다.
모아논 돈이 많지 않았던 김ㅇㅇ씨는 배우자와 함께 1,000만 원의 전세방을 얻어 어렵게 결혼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1남 1녀를 슬하에 두게 되었고 더 돈을 벌고자 치기공 사업체를 운영하였습니다.
하지만 치기공업계는 점점 기계화가 진행되었고 수작업만 하던 김ㅇㅇ씨의 사업체는 경쟁에서 밀려 매출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사업체를 유지하기 힘들었던 김ㅇㅇ씨는 폐업을 하였고 이후 늦은 나이에 지인,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요식업에 뛰어들었으나 경험 부족으로 적자가 계속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워지자 배우자와의 다툼은 늘었고 결국 별거를 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김ㅇㅇ씨는 방황을 하다가 프랜차이즈 업체에 직원으로 취직하여 근무를 시작하였지만 배우자와는 관계는 결국 회복하지 못해 이혼에 이르게 됩니다.
이혼 후 김ㅇㅇ씨는 빚을 갚으며 착실하게 생활하려 하였지만 이미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생긴 빚을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이었습니다.
김ㅇㅇ씨는 위 사연처럼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사업에 실패하였습니다.
사업의 실패의 여파는 별거에까지 이르게 하였습니다.
유일한 재산이었던 아파트 보증금은 배우자와 아이들의 거주지로 두고 김ㅇㅇ씨만 나오게 되었죠.
그 후 재기를 위하여 수많은 일을 하였으나 계속 실패하여 채무는 점점 쌓여갔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김ㅇㅇ씨는 이혼 당시 협의이혼으로 양육비부담조서를 작성하였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양육비조차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개인회생 신청서 제출 당시 미성년자녀는 1명이었으며 양육비는 800,000원이었습니다. 별거 시부터 지급하지 못하였던 양육비 91,800,000원을 지급하여야 했습니다.
양육비는 개인회생에서 어떻게 다룰까요?
양육비 채권은 일반 개인회생채권과 다릅니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조건 지급하여야 하기 때문에 소득에서 제외시키는데 추가생계비로 넣거나, 변제계획안에 양육비 항목을 추가하여 계산하거나, 소득을 산정할 때 아예 양육비를 제외하고 산정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김ㅇㅇ씨의 재판부는 양육비를 추가생계비로 인정해 주었고, 다음과 같이 수입 및 지출에 관한 목록에 양육비가 추가되었습니다.
김ㅇㅇ씨에게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당시 임차하고 있던 아파트였죠.
명의는 배우자로 되어 있었으나 김ㅇㅇ씨의 기여분도 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고 임차보증금의 2분의 1을 김ㅇㅇ씨의 청산가치로 반영하라는 보정권고가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양육비부담조서에 따라 김ㅇㅇ씨는 선지급 양육비 91,800,000원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임차보증금의 절반인 1억 원이었기에 선지급 양육비를 제외한 820만 원을 청산가치로 반영하여 변제계획안을 수정하여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즉, 법원은 청산가치를 1억 원으로 보았지만 저희는 청산가치가 820만 원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후 법원도 저희의 주장을 받아들여 개시 결정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뒤 채권자집회를 걸쳐 변제계획인가결정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미성년자녀의 양육비를 주는 것조차 버거우신 상황이라면 차라리 개인회생을 진행하셔서 자녀에게 꾸준히 양육비를 줄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차재승 변호사였습니다.